니시코리 케이 젠틀맨 워리어

특별한 성공 비결

"기록 경신은 결코 운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된 훈련과 헌신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니시코리 케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테니스라는 스포츠는 선수도 관중도 많지 않은, 그저 궁금증을 자아내는 외국의 스포츠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중 "AIR K"가 등장했고,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6세에 테니스 신동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18세에 ATP 랭킹 100위 안에 진입한 최연소 선수가 되었고, 24세가 된 올해에는 그랜드 슬램 결승에 진출한 최초의 아시아 남자 테니스 선수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웃음기 많고 잘생긴 일본 테니스계의 새로운 얼굴 케이는 그의 놀라운 온코트 스피드, 강력한 백핸드, 무자비한 그라운드스트로크와 서브에 매료된 전 세계 수많은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진정으로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시련에 흔들리지 않고 결코 어떤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는 그의 강인한 정신력입니다.

태그호이어처럼...

뛰어난 플레이로 상대 선수를 제압하며 세계 최고의 테니스 플레이어로 거듭난 니시코리 케이.
이 역대 최강의 일본인 테니스 선수는 2014년 한해 놀라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태그호이어처럼 그는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며 결코 어떤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5세 때, 그는 아버지로부터 처음으로 테니스 라켓을 선물 받았습니다. 6세가 되자 일본 테니스계는 이 테니스 신동이 선보이는 강력한 스트로크와 정확한 서브에 매료되었습니다.

일본에서 테니스는 야구와 축구의 인기에 밀려 비인기 종목으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일본 테니스계는 이 호리호리한 체구의 소년이 일본에서 테니스를 부활시킬 재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1세가 될 때까지 그는 세 번의 타이틀을 차지했고 전 일본 주니어 테니스 선수권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14세에 그는 선수의 개성을 무시하는 일본 스포츠계의 융통성 없는 방식을 따르기를 거부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코치진과 훈련하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로 떠났습니다. 이전에도 이러한 길을 택한 수많은 일본 선수들이 있었지만, 니시코리 케이는 훈련과 시합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도 유연하게 대처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즐기기까지 한 최초의 선수였습니다. 이후 그는 주니어 무대에서 승승장구했고, 2007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에도 계속해서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상이 찾아왔고 때로는 수술을 받기까지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반드시 코트로 돌아왔습니다. 올해 US 오픈에 참가한 그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혈전을 벌인 끝에 1번 시드의 노박 조코비치를 포함한 세 명의 톱시드 플레이어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니시코리 케이를 이토록 강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아시아 최고의 운동 선수이자 세계 랭킹 1위의 테니스 선수가 되려는 그의 꿈입니다. 우리는 그가 반드시 그 꿈을 실현할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태그호이어처럼 그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이고,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게임 체인저이며, 자기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서 결코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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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호이어 홍보대사

지난 150여 년 동안 태그호이어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과감하게 돌파해 왔습니다. 태그호이어는 유서 깊은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의 정밀도와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 도전해 왔습니다. 태그호이어는 브랜드 홍보대사들의 삶처럼 자신만의 룰을 세우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며, 결코 멈추지도, 타협하지도, 압박에 굴하지도 않습니다.